다양한 업종의 CEO가 모인 자리였습니다. 요즘 경기가 좋지 않아 신경이 많이 쓰인다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패션회사 CEO가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습니다. 팬데믹에서도 최고의 실적을 내던 회사입니다.
"요즘 우리도 예전 같지 않아요. 전에는 월말에만 점별 매출 실적을 확인했는데 요즘은 매주 들여다 보고 있어요."
옆에 있던 선배인 백화점 CEO가 어이없어 하며 말했습니다
"뭐? 매주 한 번? 우리는 매일 보는데? 허 참... 약 올리나."
맞은 편의 온라인 쇼핑 CEO는 한숨을 쉬며 말했습니다.
"저희는 실시간으로 보고 있습니다. 판매 수량이 프로모션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져서요."
그 옆에 있던 화학회사의 CEO가 옆 자리에 앉은 컨설팅 회사 대표에게 씩 웃으며 속삭였습니다.
"우리는 월말에만 보는데… 괜히 미안하네요."
경영에는 가시성(visibility)이 있어야 합니다. 경영의 가시성이란 사업과 조직이 현재 어디에 있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으며,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적시에, 정확하게 파악하는 역량을 말합니다. 가시성을 통해 경영자는 현실을 파악하고 행동으로 옮깁니다.
경영자는 경영의 가시성에 늘 목말라 합니다. '클릭' 한 번에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고 싶어합니다. 이를 위해 회사의 IT 시스템을 기반으로 가시성을 보여주는 대시보드(dashboard)를 만들어 매출, 이익이나 달성률 같은 지표나 주요 프로젝트의 진행 현황을 점검하고 조치를 취합니다.
새 달이 시작되고 일주일이나 열흘쯤 지났을 때 당월 누계 실적이 현저하게 낮을 때가 있습니다. 남은 기간에 부족한 실적을 만회해서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 불안해집니다. 초초해진 경영자는 실적을 만회할 수 있는 방안이 있는지 부서장과 의논합니다. 부서장은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냅니다. 업종에 따라 방법은 다르겠지만 가격 할인같은 프로모션을 합니다. 이달 이익률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게 됩니다. 때로는 소위 밀어내기를 하기도 합니다. 미래의 매출을 끌어오는 것이니 다음 달 매출에 나쁜 영향을 줍니다.
프로모션이나 밀어내기 같은 행동의 바탕에는 가시성이 있습니다. 매일 또는 매시간 실적을 알 수 있으니 조치를 취해서 해당 기간에 실적을 달성할 수는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경영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럼 가시성은 필요없는 것일까요? 없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가시성이 부족해서, 즉 월중에 매출과 이익이 어떻게 가고 있는지 알 수 없고 월말에 결산을 해 보아야 알 수 있다면 그건 경영이라고 할 수 없을 겁니다.
제가 본부장일 때 회사의 IT 시스템이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12월이 되면 대표님은 목표 달성을 할 수 있을지 궁금해져서 재무팀에 예상 실적을 집계해 보라고 자주 요청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직원들은 야근을 해야 했습니다. 예상 실적을 알아도 달리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습니다. 고객사가 갑자기 물건을 더 사줄리도 없고 갑자기 원가를 낮출 수 있는 방안도 없으니까요.
가시성은 호기심에 머무르지 말고 행동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는 '측정할 수 없으면 관리할 수 없다'(What gets measured gets managed)라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측정이나 지표가 곧 관리는 아닙니다. 관리는 행동입니다. 가시성은 행동으로 연결될 때 가치가 있습니다.
행동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먼저 업종의 속도와 지표의 주기가 맞아야 합니다. 중후장대 산업에서 지표를 일이나 주 단위로 모니터링해도 의미 있는 변화를 포착하기 어렵습니다. 건설업이나 조선업에서 일간이나 주간 매출이 뭐 그리 중요하겠습니까? 가시성의 해상도(resolution)는 의사결정의 주기와 일치해야 합니다.
또한 지표와 행동 사이의 연결 고리가 분명해야 합니다. 지표가 나빠졌을 때 누가, 무엇을, 언제 해야 하는지가 명확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대시보드는 장식이 됩니다. 특히 행동의 목적은 미래를 향한 것이어야지 당기, 즉 지금을 위한 것이어서는 안됩니다. 큰 영향을 주지 못하거나 불필요한 가격할인이나 밀어내기처럼 부정적인 영향을 줄 때가 더 많습니다
가시성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입니다. 가시성을 생각할 때 물어야 할 질문은 '무엇을 측정할 것인가'가 아니라 '이것이 보였을 때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입니다. 그 답이 없는 가시성 시스템은 정보 비용만 높이는 정교한 구경거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