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코치는 제 동료 코치입니다. 기업에서 임원과 CEO로 오래 일했고 지금은 경영자 코치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분입니다. 같이 점심을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김 코치님은 10년 넘게 CEO로 일하셨죠?”
“네. 젊은 나이에 CEO가 되어 두 군데 회사에서 대표이사를 했지요.”
“젊으셨다고요? 몇 살에 처음 대표가 되셨는데요?”
“나이 오십은 되어야 임원 승진을 하는 업계에서 40대 후반에 대표이사로 승진했습니다. 젊다는 얘기를 들을 만했습니다."
"젊은 나이에 대표가 돼서 힘든 점은 없으셨습니까?"
"회사 내에서는 괜찮았는데 외부 활동을 할 때 좀 그랬습니다. 같은 업계 회사들이 모이는 협회의 사장단 모임이 있습니다. 거기 참석해 보니 다른 대표들은 저보다 훨씬 연배가 높았습니다. 예닐곱살이 많은 분이 가장 젊은 축이었고 띠동갑이 넘는 분도 있었습니다. ‘김 대표는 아직 모르겠지만…’ 하면서 은근히 후배 취급을 하는 분도 있었습니다.”
“기분 나쁘셨겠네요. 나이 따지는 문화야 어떻게 하겠습니까만.”
“그렇죠. 협회는 매달 오찬 간담회를 했습니다. 대개 긴 테이블에 마주 보고 앉는데 가운데 상석에는 협회장과 가장 연배가 높은 사장이 앉고 끝으로 갈수록 말석이 됩니다. 저는 항상 약속시간보다 30분 전에 도착해서 그 두 분 중 한 분 옆자리에 앉았습니다.”
“앉는 자리가 그렇게 중요한가요?”
“늦으면 말석에 앉을 수도 있는 일이라지만 자리 문제만이 아니었습니다. 대개 말석에 젊은 사람이 앉아서 식사하다가 물 달라, 김치 더 달라 하는 역할을 하지 않나요? 저는 그런 거 하기 싫었습니다. 안 그래도 후배 취급을 받는데요. 유치하게 들릴지 모르겠습니다만. 하하하.”
“유치한 거 같기는 합니다.”
“하나 더 있었습니다. 협회 사장끼리 봄, 가을에 골프를 칩니다. 골프 시작 전에 기념 촬영을 하죠. 인원이 꽤 되니까 한 줄로 나란히 서면 카메라에 담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두 줄로 서야 하고 앞줄은 쪼그리고 앉아야 합니다. 저는 절대 쪼그리고 앉지 않았습니다. 나이 많은 사장들이 쪼그리고 앉건 말건 모른 척하고 저는 목에 힘 딱 주고 뒷줄에 섰습니다.”
“어떤 생각에서 그러신 겁니까?”
“따져 보면 회사 규모나 영향력으로 보아 협회의 십여 개 회원사 중에 우리 회사가 이삼 등은 됐습니다. 협회에서 회원사 순서를 정해야 한다면 회사의 매출액이나 규모로 따져야지 사장 나이순은 아니잖습니까? 제가 우습게 보이면 회사가 우습게 보이는 거니까요.”
“그런 생각이나 행동이 회사에 어떤 도움이 되었나요?”
“실질적인 도움이야 되었겠습니까? 사실 그때가 회사가 참 어려울 때였습니다. 혹시라도 직원들이 사진을 봤는데 사장이 쪼그리고 앉아 있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습니다. 회사가 쪼그라들어 있는 것처럼 보이잖아요. 직원들을 기 죽이고 싶지 않았나 봅니다. 제가 기 죽기 싫었던 건지도 모르죠.”
“직원들이 좋아했겠습니다.”
“잘못하면 업계에 괜히 소문이나 날까 봐 그때는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퇴임하고 한참 지나서 몇몇 직원들과 식사를 하다가 이야기했죠. 직원들이 '자존심을 지켜 주셔서 고맙다'고 하대요."
리더가 자신에 대해 당당한 것은 단순히 자존심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자신이 이끄는 조직 전체의 품격을 지키는 행동입니다. 김 대표는 협회 모임에서 자리 하나, 사진 한 장에도 '우리 회사가 어떻게 보일까'를 먼저 생각했습니다. 대표는 말 그대로 그 회사를 대표하기 때문입니다.
대화는 다음과 같은 김대표의 말로 마무리되었습니다.
"남들에게 이야기한다고 해도 알아주지도 않을 행동을 그때 왜 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저도 사장이라는 제 역할이나 제 자신에 대해 당당하고 싶었나 봅니다. 평소에 직원들에게 '당당하게 행동하라'고 버릇처럼 말했습니다. 손해보지 않거나 조금 더 팔겠다고 고객이나 경쟁사한테 떳떳하지 않은 일 하지 말라고요."
요즘 같은 이직의 시대에 조직에 대한 로열티(loyalty)를 강요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리더가 자기 역할과 일에 대해 스스로 당당하고 자신있게 행동할 때 구성원들도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갖고 이는 로열티로 이어지지 않을까요? 리더의 당당함은 결국 조직 전체에 스며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