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부장 때였습니다. 2월이면 팀장들이 연차나 반차를 내는 횟수가 늘어납니다. 자녀들의 졸업식 참석 때문입니다. 그들은 미안한 표정으로 이야기합니다.
“상무님, 내일 반차 좀 쓰겠습니다. 큰애 졸업식이 있어서요. 죄송합니다.”
“미안하다니요. 자식 졸업식에 가는 게 왜 미안합니까. 그건 미안한 일이 아닙니다. 당연히 졸업식과 입학식에 가야지요. 반차가 아니고 내일 하루 휴가 쓰세요.”
이십 몇 년 전에 저는 컨설턴트였습니다. 하루하루를 몹시도 바쁘게 보냈습니다. 매일 자정이 가까워서야 퇴근했고 주말도 없었습니다. 집에서 저녁을 먹는 날이 한 달에 하루나 이틀쯤 되었을까요. 두 딸은 그때 초등학생이었습니다.
2월이었습니다. 출근 길에 집 아파트 단지 바로 옆에 있는 초등학교 앞을 지났습니다. 두 딸이 다니는 학교였습니다. 교문에는 졸업식을 알리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습니다. 큰 딸의 졸업식이 며칠 뒤라는 생각이 났습니다. 졸업식 플래카드를 보면서도 졸업식에 가기 어렵겠네 하고 중얼거렸습니다. 당시 진행하던 프로젝트의 중간 보고를 준비하고 있을 때라 한참 바빴으니까요.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스스로 위로했습니다.
문득 내가 국민학교를 졸업할 때 내 아버지가 오셨던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업에 바쁘셨던 아버지는 졸업식에 오지 못하셨습니다. 그러고 보니 아버지는 제 졸업식에 한 번도 오신 적이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제가 중학교 2학년 때 급환으로 돌아가셨으니까요. 아버지와 같이 찍은 졸업 사진이 한 장도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초등학교뿐 아니라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대학원 모든 졸업식에서 말입니다. 울컥 하고 눈물이 흘렀습니다. 눈물 때문에 운전을 할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당신이 몇 년 후에 돌아가실 줄 아셨을까요? 사십 대 초반의 나이였던 아버지는 당신이 그렇게 일찍 돌아가실 거라고 생각하지 못하셨을 겁니다. 아셨다면 졸업식에 오셨겠지요. 더 많은 시간을 가족과 함께 하려고 하셨을 겁니다.
큰딸이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 저는 마흔이 채 되지 않은 나이였습니다. 몇 년 후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나이가 될 예정이었습니다. 제가 몇 년 후에 가족 옆에 있지 못할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아버지의 경우를 보아도 그렇고 사람 일이란 알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결심했습니다. 딸들의 중요한 순간에 꼭 옆에 있겠다고요. 우선 졸업식이나 입학식에 반드시 참석하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때부터 큰 딸과 작은 딸의 졸업식에도 가고 입학식에도 갔습니다. 초등학교 졸업식과 중학교 입학식, 중학교 졸업식과 고등학교 입학식, 심지어 부모가 잘 가지 않는 대학교 입학식까지 찾아 다녔습니다. 졸업식은 2월이고 입학식은 3월입니다. 2월에도 나타나고 3월에도 나타나니 딸들이 바쁘면 오지 않아도 된다고 하더군요^^
일하는 사람들은 가족과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것에 항상 부채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가족과 같이 보내는 시간은 양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가가 더 중요하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그래도 충분한 시간을 같이 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제 생각이지만 최소한 가족의 중요한 이벤트에는 같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리더는 입학식과 졸업식은 물론이고 유치원 재롱잔치, 초등학교 운동회에 가는 부하 직원이 미안함을 느끼게 해서는 안 되지 않을까요?
그러고 보니, 졸업식에도 못 오셨던 제 아버지가 학교에 오셨던 적이 있습니다. 국민학교 2학년 때였나 특이하게 아버지 참관 수업이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오시겠다고 했지만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수업은 시작되었습니다. 아버지들도 오시고 어머니가 대신 오신 친구도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수업 시작 전에 담임 선생님은 뒤에 서 계시는 부모님을 돌아보지 말고 수업에 집중하라고 단단히 일렀습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오셨는지 궁금했던 저는 수업 중간에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아, 아버지가 오셨습니다. 눈이 마주쳤습니다. 저를 보고 빙그레 웃던 내 아버지의 미소를 저는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박찬구 코치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