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상무, 요즘 누구 만나나?”
20여년 전에 모시고 일하던 회장님의 질문입니다. 회장님의 질문은 어디를 강조하는지 잘 들어야했습니다. 예를 들어서 ‘만나나?’를 강하게 발음하면 배우자 외에 다른 사람이 만나고 있느냐는 뜻이 되고, ‘누구’를 강하게 하면 어떤 사람들과 교제를 하고 시간을 보내고 있느냐는 의미가 됩니다. 다행히 회장님은 ‘누구’를 강하게 발음했습니다. 요즘 주로 어떤 사람들을 만나서 식사도 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느냐는 질문이었습니다.
그런 걸 왜 궁금해 하시나 싶었습니다. 전 직장 동료나 친구들을 만난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그런 대답을 듣자고 질문하신 것은 아닌 거 같았습니다. 누구를 자주 만나는지, 어떤 사람들인지, 어떤 대화를 나누는지, 나아가 요즘 관심사가 무엇인지 하는 질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업무 외에 누구를 만나는지, 점심과 저녁은 누구와 먹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회사 내 회식이 많았습니다. 회사를 옮긴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였고 맡은 부서도 많았으니 직원들과 가까워져야겠다는 생각에 회식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친구들과 저녁 약속을 하기도 힘들었고 옛 직장 선후배도 만나지 못해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듣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조직관리도 중요하지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야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경영자는 약속이 많습니다. 점심이나 저녁을 업무상 또는 교제상 먹게 됩니다. 저도 바쁘게 살았던 시절에는 평일에 집에서 저녁을 먹은 적이 한 달에 한두 번 될까 말까 했습니다. (후회되는 일입니다. 지금은 성인이 된 두 딸이 십대일 때 밥상에서 대화를 나누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리 중요하고 바쁜 일도 아니었던 거 같습니다.)
가끔 ‘내가 요즘 누구와 저녁을 먹고 있지?’, 즉 업무 외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있느냐는 질문을 나 자신에게 던져 봅니다. 어떤 사람들과 어떻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가는 내가 요즘 어떤 상태인지 알려 줍니다. 직원들과 같이 식사를 하는 경우가 많다면 조직 관리에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이고, 외부 거래선이나 업무 관계자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성과에 집중하고 있는 것일 겁니다. 가족이나 친구, 선후배와 같이 일과 후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휴식을 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누구‘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가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균형입니다. 그것도 의도한 균형입니다. 의도하지 않고 어쩌다 보니 직원과의 간담회에 대부분의 점심, 저녁을 보내고 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조직의 평화와 업무의 성과를 위한 만남도 필요하지만 가정의 행복을 위한 시간도 필요하고 오랜 친구와 마음 터놓고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도 중요합니다.
특히 경영자가 주의해야 할 것은 만남이나 대화의 범위나 상대가 회사 내부 지향적이 되는 것입니다. 규모가 큰 회사의 경영자는 그렇게 되기 쉽습니다. 왜 규모가 큰 회사의 경영자는 그렇게 되기 쉬울까요?
제가 코칭했던 A전무는 휘하에 1천명이 넘는 구성원이 있었습니다. 조직과 사람 관리가 A전무의 중요한 임무입니다. 그는 거의 매일 점심은 직원과의 간담회로 저녁은 리더들과의 저녁식사로 시간을 보냈습니다. 가족이나 친지와 식사를 해 본 것이 오래 되어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업무상 파트너와 얼굴 본 지가 오래되어 막상 풀어야 할 일이 생겨서 오랜 만에 연락하려니 무안했던 적이 있다고 합니다.
제 선배인 B대표는 직업이 CEO라고 불리는 분입니다. 연이어 여러 회사의 CEO를 지내고 있습니다. 그도 한동안 회사를 쉬었을 때가 있었습니다.
“선배님,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재미있게 보내고 있지. 그런데 회사를 그만 두니 만나는 사람이 달라졌어.”
“어떤 분들을 만나시는데요?”
“요즘은 화가도 만나고 음악가랑도 친하게 지낸다고.”
“뭐가 다른가요? 예술가를 만나면 식사 메뉴가 달라집니까?”
“대화가 다르지, 대화가. 돈 버는 이야기나 사람 이야기를 안 하게 되니까 참 좋아요.”
겨울과 함께 연말이 돌아왔습니다. 경기는 좋지 않지만 그래도 송년회는 있을 겁니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회사 밖의 분들’에게 연락해서 자리를 함께 하는 것은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