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자는 누군가와 같이 있을 때가 많습니다. 일과의 거의 모든 시간은 보고를 하거나 받거나, 아니면 회의로 채워집니다. 저도 바쁜 날은 오전에는 1시간을 넘지 않는 회의나 보고 한두 건, 오후에는 약간 긴 회의를 포함해서 두세 건이 있었습니다. 회의와 회의 사이에 길어야 30분 정도 비는 시간이 있으니 하루에 혼자 있는 시간은 2시간을 넘지 않았습니다. 이러니 혼자 있을 때가 거의 없었습니다.
점심시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직원들과 같이 하거나, 회사를 방문한 고객사 관계자를 모시거나, 사장님과 같이 합니다. 점심을 먹을 때도 그냥 밥만 먹지는 않습니다. 밥을 먹으면서도 일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직원들과 점심을 할 때는 부서 분위기는 어떤지, 개인적으로 힘든 일은 없는지 살핍니다. 고객사와 식사를 할 때는 우리 회사의 제품이나 서비스에 불만은 없는지, 내년에는 주문이 늘어날 것인지 슬며시 떠보기도 합니다. 이렇게 경영자는 점심 한 끼를 먹어도 목적이 있습니다.
아침 일찍부터 오전에만 두세 개의 회의가 연속으로 있었던 날이었습니다. 내용도 중요한 회의라 12시반쯤에 오전 일정만 끝났는데도 하루가 끝난 듯 에너지가 방전된 기분이었습니다. 그날은 마침 회의 참석자들과 점심 일정도 없었습니다. 그럴 때는 대표와 점심을 같이 할 일종의 점심조^^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비서인 A대리가 제게 제안했습니다.
“대표님, 점심 드실 거 사다드릴까요? 사무실에서 한숨 돌리시면서 드시죠.“ 어쩌면 그날은 점심조 조달에 실패했는지도 모릅니다.
A대리가 사 온 샌드위치와 수프를 먹으며 아침에 보지 못한 신문을 읽었습니다. 신문을 읽다가 오전 회의 때 깜빡 잊고 지시하지 않은 사항이 생각났습니다. 미처 검토하지 못한 오후 회의자료를 훑어보면서 회의에서 논의할 사안이 더 생각나기도 했습니다.
이후에 저는 점심 약속이 없을 때는 같이 점심할 사람을 일부러 찾지 않고 혼밥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혼밥을 하는 시간은 에너지도 보충하고 생각도 가다듬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혼자 있는 시간은 비우는 시간이었습니다. 오전에 있었던 회의나 걱정을 비우고 오후와 다음 날을 준비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내향적인 사람이 조직 생활에 적응하다 보면 어느 정도는 외향적이 됩니다. 사실 외향적인 ‘척’하는 것이지요. E인 척하는 I입니다. (MBTI에서 외향성을 뜻하는 E와 내향성을 의미하는 I입니다) 저는 E인 척하는 I를 ‘생계형E’라고 부릅니다. 먹고 살다 보니 또는 먹고 살려고 E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저도 어느 정도 그렇습니다^^) 혼밥의 시간은 생계형E가 동굴 속으로 들어가 쉬는 시간입니다.
우리 사회는 혼자 밥 먹는 사람을 약간 불쌍하게 봅니다. 우리 사회만 그런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Never Eat Alone’(‘혼자 밥먹지 말라’)는 제목의 자기개발서도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가끔 목적 없는 한 끼를 해 보십시오. 간단히 점심을 먹으며 음악도 듣고 일과 상관없는 책도 들춰보면서요. 그러다 잠깐 졸아도 괜찮습니다. 혼자 점심 드시면서 쉬고 비우고 생각에 잠겨 보시는 것이 직원이나 고객과 점심을 같이 하는 것보다 더 가치있을 수 있습니다. 게다가 혼자 있으면 한 시간의 점심 시간이 꽤 길게 느껴져서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