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 경기 중계에서 은퇴한 선수들이 해설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 선수로 뛰었기 때문에 경기의 상황이나 선수의 심리를 날카롭게 분석하고 들려주어 큰 도움이 됩니다. 그런데 가끔 그들의 말에서 불편하게 느껴지는 표현이 있습니다. 바로 ‘후배지만…’ 입니다. ‘후배지만 타격만 잘 하는 게 아니라 수비도 뛰어납니다.’ 거나 ‘후배지만 야구뿐 아니라 리더십도 인정 받고 있는 선수이죠.’ 같은 식입니다. 대개 선수들을 칭찬하는 말을 할 때 ‘후.배.지.만.’하고 시작합니다. 까칠하게 해석하자면 ‘본디 후배는 선배보다 모자란 법이지만 저 친구는 괜찮다.’라는 함의(含意)가 있습니다.
후배보다 공부나 일을 일찍 시작한 사람을 선배라고 부릅니다. 후배가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는 당연히 선배가 후배보다 일에 능숙합니다. 입사 2년차와 갓 입사한 신입사원은 차이가 큽니다. 입사 2년차는 팀장이 눈짓만 해도 알아 듣지만 신입사원은 아직 복사기도 제대로 다룰 줄 모릅니다.
학습이나 경험이 쌓이면서 선배와 후배 사이의 차이가 좁혀집니다. 과장 2년차와 과장 1년차는 큰 차이가 없습니다. 개인의 차이가 세월의 차이를 넘어서기 시작합니다. 후배가 선배를 넘어서기도 합니다. 연공서열에 의해 승진을 결정하는 회사가 아닌 경우에 후배가 먼저 승진해서 후배가 선배의 상사가 되기도 합니다.
심지어 후배가 일가(一家)를 이루기도 합니다. 이런 후배에게 선배가 '후배지만'하고 운운하는 것은 듣기 애처롭습니다. 김연아 선수 이전에 날렸던 여자 피겨 선수가 있다고 가정해 볼까요? 그가 해설을 하면서 김연아에게 '후배지만...' 이라고 했다면 얼마나 우스울까요.
선배가 후배에게 '후배지만…' 이라는 표현을 쓰고 싶어진다면 선후배 따질 시점은 이미 지났다고 보아야 합니다. '후배지만'이 입가에 맴돌면 그냥 꿀꺽 삼켜야 하지 않을까요?
홍콩 최고의 부자로 불리우는 리카싱(李嘉誠)은 ‘젊은 사람에게 점심을 사라.’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들이 밥값이 없으니 베풀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젊은 사람의 생각을 듣고 미래를 준비하라는 이야기입니다. 지금까지는 대개 젊은 사람들이 나이 든 사람의 경험을 듣거나 관계 맺기를 원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후배가 선배에게 배울 것보다, 선배가 후배에게 앞으로 어떻게 미래를 살아갈 것인가를 듣는 편이 사회에 더 도움이 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리카싱의 말은 젊은이의 미래와 관계를 맺고 더 나아가 젊은 사람들의 미래를 사라는 것입니다. 점심 한 끼에 미래를 살아갈 그들의 생각과 꿈을 들을 수 있으면 수지 맞는 일입니다.
글을 마무리하면서 갑자기 떠오른 생각입니다. ‘후배지만…’과 달리 '선배지만…'은 선배에 대해 부정적인 얘기를 할 때 시작하는 말입니다. '선배지만..' 다음에 나오는 선배는 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같이 점심을 먹으며 미래에 대한 후배의 생각과 포부를 청해 듣는다면 그런 선배가 아닐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