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한 후배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후배는 서치펌(search firm), 즉 헤드헌팅을 하고 있습니다.
“아이구, 오랜 만이네. 잘 지내죠?”
“네. 잘 지냅니다, 선배님. 그런데 거기 계열사에 있던 A상무라고 아시죠?”
전화를 받았는데 ‘누구 알지?’ 하는 말을 들으면 긴장합니다. 평판을 묻는 질문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잘 아는 사람이던 그렇지 않던, 사람에 대해 이야기해 주는 일은 때로 곤혹스럽습니다.
A상무는 회사는 다르지만 업무 관계가 있어서 친하게 지냈습니다. 그는 수퍼 세일즈맨이라는 평을 듣는 뛰어난 영업 담당 임원이었습니다. A상무는 그룹을 떠나 B사로 옮겼고 그곳에서도 성과를 인정받고 대표로 승진했습니다. 후배는 그가 B사보다 더 큰 회사에서 대표로 영입 제의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최종 후보였고 평판 조사를 하는 단계였습니다. 다행히 후배는 제게 A대표에 대해 묻지 않았고 그에 대해 이야기해 줄 수 있는 사람을 추천해 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몇 명을 추천해 주었습니다.
몇 주 지나서 궁금해졌습니다. A대표를 영입하려고 하는 회사의 업종은 우리 회사와도 관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후배에게 전화를 해서 평판조사 결과는 어떠했는지 A대표가 가능성은 있는지 물었습니다. 당연히 후배는 곤란해했지만, 다음에는 도와주지 않겠다는 제 협박^^에 마지못해 입을 열었습니다.
“선배님, 저도 이런 적은 처음인데 말입니다. 그쪽 계열사에 있을 때와 B사에 있을 때의 평이 너무 달라서 말이죠.”
“엥?”
“계열사에 있을 때는 똑똑하고 실적 잘 내는 임원이고 존경하고 닮고 싶은 선배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B사에서는 평판이 너무 안 좋네요. 다시는 같이 일하고 싶지 않은 대표가 되어 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저도 고민입니다. 고객사에 이걸 어떻게 설명하나 싶습니다.”
후배의 이야기를 들으며 사실 저는 당황했습니다. 후배가 제게 A대표의 평판을 물었다면 저도 훌륭한 경영자라고 답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A대표가 B사에서는 왜 그런 평판을 얻었는지 궁금했습니다.
얼마 후 한 다리 건너서 A대표가 B사에서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 들을 수 있었습니다. B사는 월요일에 임원회의를 했습니다. A대표는 임원별로 담당 부서에서 진행되고 있는 업무에 대해 일일이 보고를 받고 하나하나 지시했습니다. 위임이나 책임경영은 없었습니다. A대표는 임원이 내린 의사결정이 자신의 생각과 다르면 크게 화를 냈습니다. 또한 뒤에서 임원들이 실력도 없고 열심히 일하지 않는다고 불평했습니다. 임원들은 점점 자신이 결정할 수 있는 일도 결정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급한 결정도 미루어 두었다가 월요일 임원회의에서 대표에게 보고하고 지시를 받았습니다. 아무리 고민해서 결정해도 월요일 임원회의에서 대표에게 혼나고 다른 방향으로 바뀔 수 있었으니까요. 아침 7시에 시작해서 점심 전에 끝나던 월요일 임원회의는 점점 늦어져 오후 늦게나 끝나게 되었습니다.
B사에서의 A대표의 평판은 제가 알던 A상무가 아니었습니다. 제가 A대표에 대해 알고 있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제가 A대표를 잘못 보았을까요? 아니면 제가 사람 보는 눈이 부족했을까요?
제가 알고 있던 사람은 ‘상무 시절의 A대표’였습니다. 일 잘 하고 대인 관계 원만한 A상무였습니다. A상무는 팀장들의 업무 진행을 꼼꼼히 챙기고 부서의 일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B사로 옮기고 승진해서 대표가 된 후에 그는 달라졌을까요? 달라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임원 때 만큼 열심히 일하는 A대표였을 것입니다.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일하는 방법이 문제가 될 수는 있습니다. 대표의 역할과 일하는 방법은 상무의 그것과 다릅니다. A상무는 A대표가 된 후에도 계속 상무처럼 일했습니다. 코칭 용어로 그는 전환(transition)을 하지 못했습니다. 영업이라는 하나의 기능의 리더(leader of function)에서 회사의 리더(leader of enterprise)로의 전환을 하지 못한 것입니다.
승진한 리더 중에 ‘높아지더니 사람이 변했어’ 라는 평을 듣는 사람이 있습니다. 듣는 사람은 그런 말이 불편합니다. 그렇지만 팀장에서 임원이 되고, 임원에서 대표가 되었는데 변한 게 없다면 오히려 문제입니다. 변하는 게 정상입니다.
변해야 하는 것은 일하는 방법과 태도입니다. 팀장은 팀장답게 임원은 임원답게 대표는 대표답게 일해야 합니다. 팀장이 되어서도 팀원때 처럼 흡연장소에 둘러서서 해맑게 상사나 회사에 대해 험담을 하거나 상무가 되어서도 팀장때 처럼 팀원들이 진행하고 있는 사안에 대해 일일이 점검하는 것은 팀장이나 상무답게 일하는 것이 아닙니다.
높아지면 사람은 변해야 합니다. 낮은 곳에서는 발밑을 보아도 높은 곳에 서면 멀리 보아야 합니다. ‘사람이 한결같다’는 말은 조직에서는 통하지 않는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