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9 (2025. 06. 17)
호러 영화는 무섭습니다. 관객이 무방비 상태일 때 뭔가 덮치기 때문입니다. 영화에 살인마나 좀비가 나오는 것을 알고 영화를 보기 시작했어도 그들이 언제 나타날지 모르기 때문에 무섭습니다.
대학에서 교수로 일하고 있는 친구들은 60세가 넘어가면 카운트다운에 들어갑니다. ‘이제 3년 남았어‘. 하고 아쉬워합니다. 정년까지 3년 남았다는 뜻입니다. 저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부럽다고 말해 줍니다. 그들은 정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그게 뭐가 부러운 일이냐고 의아해합니다.
제가 정년이 있는 친구들을 부러워하는 이유는 정년까지 근무할 수 있어서가 아니라 언제 은퇴할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업에서 일하는 경영자가 퇴임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퇴임하리라는 것은 알아도 언제 퇴임이 다가올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마치 호러 영화의 살인마나 좀비처럼 말입니다.
고참 임원을 코칭할 때 퇴직 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합니다. 임원들은 퇴임을 이야기할 때 항상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이라고 단서를 붙입니다. 그들도 회사를 그만두는 날이 언제인지 모른다는 것을 의식하고 있고 불안해합니다.
거의 대부분의 임원은 회사를 떠나는 날을 자신이 정하지 못하고 퇴임을 통보받습니다. 자신이 먼저 회사에 사임 의사를 밝혔다는 선배는 전설의 동물과도 같습니다.
매월 한 번씩 2년 넘게 코칭한 경영자가 있었습니다. 가을이 깊어가면 이분은 불안해했습니다. 11월에 만나면 ‘오늘이 코치님을 뵙는 마지막일지 모르겠습니다.’ 하고 작별 인사처럼 말했습니다. 그러다 인사 발표 후에 다시 만나면 표정이 한층 밝아져 있었습니다. 이분은 이렇게 매년 3개월은 ‘올해는 그만 둘지도 몰라‘ 하면서 보내고 있었습니다.
퇴임 시기가 불확실한 것은 큰 스트레스입니다. 고참 임원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다른 불확실성은 퇴임 후의 생활입니다. 30년 가까이 회사만 다녔으니 퇴임 후 자신의 하루가 어떤 모습일지 잘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퇴임 후에 대한 대화를 나눌 때 표정이 밝고 에너지가 넘치는 임원도 있습니다. 퇴임 후에 할 일을 생각해 놓은 분들입니다. 그들은 주말에 틈을 내어 퇴임 후에 할 일을 준비합니다. 마련해 놓은 땅에 딸과 함께 작은 식당을 하겠다고 요리강좌를 알아보는 분이 있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할 때 그분의 얼굴은 마치 신입사원 같아 보였습니다.
퇴임 후에 할 일을 정해 보면 어떨까요? 퇴임 후의 모습에 대한 불확실성을 낮추는 것입니다. 생각만 하거나 고민만 하지 말고 잠정적으로 정해 보는 겁니다. 준비를 하지 못해도 좋습니다. 정해 놓지 않고 퇴임하면 무엇을 하겠다고 결심하는데만 1년이 넘어 걸립니다.
저는 퇴임 후에 경영자 코치를 해 보겠다고 생각만 하고 있었습니다. 매년 올해는 휴가를 내서라도 코치 공부를 하겠다는 결심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도 별 수 없이 예상 못했던 퇴임 통보를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2월말일에 퇴임을 하고 3월 5일부터 코칭 공부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최소한 결심은 하고 있었으니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누구나 회사와 ‘헤어질 결심’을 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 시기와 퇴임 이후에 대한 불확실성이 우리의 삶을 호러 영화로 만듭니다. 퇴임 시기에 대한 불확실성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퇴임 후에 할 일에 대한 결심은 할 수 있습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요? 우선 딴짓을 시작해 보십시오. 딴짓을 통해 회사를 떠나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알아볼 수 있습니다. 퇴임 후에 시작하는 딴짓은 딴짓이 아닙니다. 회사 다니면서 해야 딴짓입니다. 노래가 본업이지만 그림도 그리는 조영남은 딴짓 예찬론자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 하고 있는 것 말고 딴 것도 해 봐라. 하고 싶은 게 있으면 해 봐라. 다 될 수 있으니까.‘
마지막 말이 가슴에 꽂힙니다. 뭔들 못하겠습니까? 회사도 30년을 다녔는데요.
박찬구 코치 드림
chankoo.park@parkjam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