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직장 생활을 하다가 경영대학원을 다녔습니다. 대학원을 마치고 모그룹의 경제연구소에 입사했습니다. 연구보고서를 만드는 것이 주 업무였지만 가끔 그룹에서 요청하는 업무도 있었습니다. 그중 하나가 그룹 회장 말씀으로 어록집을 만들기 위해 회장이 참석한 회의의 녹음을 듣고 어록에 실릴 만한 부분을 찾는 일이었습니다.
한달 정도 연구원 서너 명이 호텔 방에서 종일 헤드폰을 쓰고 회의 녹음을 들었습니다. 제가 들었던 회의만 수십 개였습니다. 녹음은 짧은 것은 2시간, 긴 것은 5시간도 넘었습니다. 회의는 여러가지였습니다. 회장과 계열사 사장 및 고위 임원과의 회의도 있었고 회장과 회장실 임원과의 회의도 있었습니다. 모두 이름만 들어 본 높은 분들이었습니다. 이런 분들의 회의를 엿듣는 것은 당시 과장이었던 저에게는 몹시도 흥미로우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던 기회였습니다.
그때 배운 것에 제목을 붙이자면 ‘경영자의 소통법’ 이라고 하겠습니다. 회장 말씀에서도 배운 것이 많지만 참석한 사장과 임원들의 소통 방법에서 배운 것이 더 많았습니다. 그때 제가 배운 것을 네 가지로 정리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경영자는 철저히 두괄식으로 말합니다.
그분들은 항상 결론부터 말했습니다. 회장의 질문에 대해 '그렇다', '아니다' 또는 '이거다', '저거다'부터 이야기했습니다. 질문을 받고 바로 결론부터 대답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머리 회전이 빠르거나 준비가 되어 있거나, 아니면 두 가지 모두일 것입니다.
두괄식 화법은 첫 문장을 들으면 의문이 이어지게 마련입니다. ‘A가 더 좋을까, B가 더 좋을까?’ 하는 질문이 있다고 합시다. 두괄식으로 ‘A입니다.’라고 결론부터 말하면 자연스럽게 ‘왜 그렇지?’ 하는 의문이 떠오릅니다. 그분들은 듣는 사람이 묻기 전에 설명을 바로 이어갔습니다. 예를 들면, 회장이 ‘우리가 C사업을 해 보는 건 어떨까?’ 하고 물었다면 ‘회장님, 그건 좀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첫째는 어쩌구, 둘째는 저쩌구...’ 하는 식으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회의는 효율적이었고 회의 대화를 받아 적으면 그대로 회의록이었습니다.
둘째, 경영자는 할 말은 합니다.
참석한 사장이나 임원의 발언을 들으면서 나도 모르게 '헉' 소리가 절로 나오는 경우가 적지 않았습니다. 표현은 돌려서 했지만 돌직구였습니다. 회장이 아무 말없이 듣는 것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특히 회장실 임원과의 회의에서 그런 일이 많았습니다. 참모의 역할인 직언과 리더의 경청이 작동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계열사의 사장 및 임원과의 회의였습니다. 회장의 생각과 사장의 생각이 달랐습니다.
"회장님, 그게 아니구요. 어쩌구 저쩌구..."
"무슨 소리야. 아, 이거 사장이라는 사람이 그것도 몰라."
"아뇨, 회장님, 다시 설명 드리면 어쩌구 저쩌구..."
"허, 이거 참... 아, 이 사람이… 그게 어떻게 그래!"
회장의 언성은 높아지고 조마조마해서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사장이 당장 짤리지 않나 싶을 정도였습니다. 사장은 차분하게 계속 설명을 했고 회장은 이해되기 시작했는지 더 이상 별 말없이 듣기 시작했습니다.
그 격렬한 논쟁이 마무리될 즈음에 갑자기 회장이 "어! 밖이 깜깜해졌네. 오늘은 여기까지 합시다. 하고 회의를 끝냈습니다. 회장은 나가면서 “화장실도 한번 못 갔네" 하고 한 마디 툭 던졌습니다. 그 회의 녹음은 6시간 연속이었습니다. 참고로 그 사장님은 엄청 오래 회사를 다녔습니다.
(다음 주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