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의 핵심 중 하나는 원가 절감입니다. 제가 일했던 회사에서도 매년 원가절감 목표를 정하고 절감 아이디어를 도출해서 실천했습니다. 각 부서에서 주관부서인 경영혁신팀에 원가절감 아이디어를 제출하면 심사를 거쳐 실행을 결정합니다. 아이디어는 경영혁신팀과 재무팀이 공동으로 심사합니다. 경영혁신팀은 아이디어의 절감방법이 타당한지, 재무팀은 기대효과가 적절히 산정되었는지 따져 봅니다. 즉, 재무팀은 주관부서인 경영혁신팀을 지원하는 역할을 합니다.
어느 해엔가 재무팀의 심사가 지연되어 절감 아이디어 확정이 늦어진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첫번째 이유는 재무팀이 바빠서였습니다. 두번째 이유는 아이디어 심사에 재무팀이 소극적이었습니다. 원가절감에 대한 자신들의 기여가 적지 않은데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니 재무팀 직원들은 심사 업무에 소극적이었습니다. 두번째 이유를 해결하면 아무리 바빠도 심사 업무에 열의를 보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단 보고자료의 표지에 경영혁신팀과 함께 재무팀을 같이 명기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보고할 때 기대효과의 전반에 대해서는 경영혁신팀장이 아니라 재무팀장이 발표하도록 했습니다. 아이디어별 평가 시트에도 참여한 재무팀 팀원의 이름을 밝히도록 했습니다. 우수한 아이디어는 보고 때 샘플로 발표를 하는데 기대효과는 재무팀원이 발표하도록 했습니다. 이런 조치는 재무팀에 책임감을 심어 주기도 하지만 주관부서인 경영혁신팀에 가려져 있던 지원부서인 재무팀을 드러나게 했습니다.
이후에 다른 프로젝트에 대해서도 보고할 때 주관부서명과 지원부서명은 물론 참여한 팀원의 이름까지 보고서나 발표자료의 표지에 밝히도록 했습니다. 표지가 복잡해지는 점 말고는 참여한 직원들은 모두 좋아하더군요.
회사에서 벌어지는 일 중에 하나의 부서가 단독으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다른 부서의 도움을 받거나 같이 일해야 합니다. 다른 부서가 완성한 일을 받아서 한다든지, 우리 부서가 한 일을 다른 부서가 완결해 주어야 하는 일도 있지만 우리 부서가 하는 일의 중간에 다른 부서로부터 도움을 받기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타 부서의 일방적인 도움이 필요한 경우에 해당 부서가 바쁜 경우에는 참으로 곤란합니다. 바쁜 거 알면서도 우리 일을 먼저 해 달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요. 현실은 바빠서 지원을 해주지 못하는 경우보다 열심히 도와주지 않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일의 공은 도움을 청하는 부서가 가져가기 때문입니다.
주관부서에 대한 인정은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참여부서에 대한 인정은 많은 조직이 잊고 있는 일입니다. 참여부서에 대한 인정에 약간만 신경 써도 조직 내 협업은 순조로워집니다. 돈이 드는 보상도 아니고 인정이니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또한 기업에는 개인보다 조직이 우선시되어야 한다는 불문률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부서명에 묻혀 있는 개인의 기여를 인정해 주면 부서의 에너지 전체가 올라갑니다. 결국 조직도 개인이 모여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조직을 우선하면서도 개인에 대해서 존중하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만 불가능한 것도 아닙니다.
개인의 기여를 인정하는 것은 개인을 드러나거나 튀어 보이게 하는 일입니다. 튀어 보이는것은 불편하지만 공식화하면 더 이상 튀어 보이지 않습니다. 공식적으로 드러나게 함으로써 뒤에 숨어 있는 개인이나 부서에 힘을 실어 주십시오.
박코치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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