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척 모임이 있었습니다. 제가 먼저 도착했고 어머니는 동생이 모시고 오는 중이었습니다. 어머니를 기다리느라 식사가 늦어지고 있었습니다. 동생에게 전화를 했더니 길을 잘못 들어서 돌아가고 있다고 했습니다.
“거, 일찍 출발을 했어야지. 그리고 맨날 다니는 길을 왜 놓쳐 놓치기는. 빨리 오라고.”
전화를 끊으니 옆에서 보고 있던 사촌누나가 허리를 잡고 웃고 있었습니다.
“방금 네 말투가 꼭 사장님이 직원 나무라는 거 같았어. 너 회사에서 어떤 분위기인지 알겠다.”
저도 슬며시 웃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누구나 여러 개의 모자를 갖고 있습니다. 동시에 여러 개의 모자를 쓸 수는 없으니 모자를 바꿔 쓰고 다닙니다. 회사에서는 부서장이나 부서원의 모자를 쓰고 있지만, 집에서는 부모나 자식의 모자를 쓰게 됩니다.
때와 장소에 따라 다른 모자로 바꿔 써야 하지만 우리는 간혹 모자를 바꿔 쓰는 것을 잊어 버립니다. 학교 시절 친구들이 모여 짓궂은 농담을 주고받는 모임에서 무게 잡다가 ‘네가 회사에서나 사장이지 여기서 사장이냐’ 하고 등짝을 맞는 친구들이 가끔 있습니다. 같은 직장에 다니는 학교 때 선배를 오빠나 누나라고 부르거나 후배를 반말로 대하다가 ‘여기가 학교냐?’ 하는 상사의 책망을 듣기도 합니다.
사람들의 직장에서의 모습과 집에서의 모습은 대개 다릅니다. 가족을 초청하는 행사를 해 보면 회사에서는 호랑이 팀장님이 집에서는 애교 많은 고양이가 된다는 게 탄로납니다. 직원들의 카톡 플픽 사진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가족과 찍은 사진의 표정은 회사에서의 진지하고 엄숙한 표정과 달리 밝고 웃음이 넘칩니다.
한번은 회의 중에 인사팀 A팀장의 휴대폰이 울렸습니다. 발신번호를 확인한 그는 죄송하다고 하면서 회의실 구석에 가서 전화를 받았습니다. A팀장의 나긋나긋한 말투는 방금 회의 중에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단호하게 말하던 그가 맞나 싶었습니다.
“그으래? 그렇군나아. 그건 그렇게 하고. 아빠가아 퇴근하면서 사갖고 갈께. 그래애. 아빠가 회의 중이니까 나중에 전화하자아!” (음성지원이 되지 않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전화를 건 사람은 A팀장의 딸이 틀림없었습니다. 다른 참석자들은 서로 얼굴을 보면서 킥킥거렸습니다. 통화가 끝나고 자리에 앉은 딸바보 A팀장에게 한 마디 했습니다.
“딸내미한테는 아주 넘어가는구만 넘어가. 직원들한테 그렇게 한 번 해 봐라. 회사에 평화가 오것다.”
“대표님, 저도 일대일로 마주 앉으면 다정한 남자입니다.”
A팀장도 지지 않고 말했습니다. 그는 엄격한 원칙주의자이지만 사실 속은 따뜻했습니다. 인사팀원들은 그 사실을 알지만 잘 모르는 다른 직원들이 그를 어려워할 뿐이었습니다.
우리가 쓰는 여러 개의 모자를 심리학에서는 페르소나(persona)라고 부릅니다.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은 인간은 천 개의 페르소나(가면)를 지니고 있어서 상황에 따라 적절한 페르소나를 쓰고 관계를 이루어 간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스트레스 상황 하에서 우리는 미처 가면이나 모자를 바꿔 쓰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회사에서 힘든 일이 있었던 날에는 퇴근해서도 실수한 부하직원에게 하듯이 짜증내면서 가족을 대하기도 합니다. 제가 늦게 오는 동생에게 훈계같이 말했듯이 말입니다. (변명하자면^^ 저는 직원에게 짜증을 부리는 상사는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여러 개의 모자를 갖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모자를 바꿔 가면서 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나는 몇 개의 모자를 가지고 있고 어떤 때 그 모자를 써야 할까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 개의 모자가 들어 있는 상자를 가지고 다닌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상자가 무거울까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마음의 모자이기 때문입니다.
박코치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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